[고전산문 341] 세 바보 이야기
- 작성일
- 15-03-08 21:27
[번역문]
어떤 동자가 돌을 쌓아서 시냇물을 막았는데, 그때마다 무너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을로 달려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이들이 풀과 넝쿨을 베어 쌓고 그 위에 흙과 모래를 채워 넣어 둑을 쌓았는데, 합창을 하듯이 영차, 영차 소리를 지르고, 적병을 막듯이 온갖 애를 다 썼다. 몸이 지치도록 고생을 하면서 쉬지 않고 쌓아, 반나절 정도 되어서 겨우 시냇물을 겨우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가득 차면서 둑을 들이쳤다. 여기저기가 넘치고 터지고 하면서 흙이 쓸려나가고 풀더미가 무너져, 동자가 애써서 막아 놓은 것이 말짱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동자는 오히려 냇물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면서 둑을 쌓았는데, 막으면 막을수록 더욱더 터져 나갔다. 아, 이것은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이 하늘을 날던 연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달려가 주우려고 하였다. 한 아이가 가까이 있다가 먼저 주워 가지고 갔다. 아이들은 이미 다른 아이가 주워간 것을 모르고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지쳐 쓰러져 땀을 줄줄 흘리면서 숨을 헐떡거렸다. 얼마 뒤에 간신히 연이 떨어진 곳에 이르러 연을 찾았으나, 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시금 떨어진 연을 찾아 돌아다녔다. 아, 이것은 한갓 헛수고만 한 것이다.
아이들이 모여 시장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기와 조각과 여러 가지 기물을 벌여 놓고 나뭇잎을 따서 돈과 음식을 대신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오가며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며 재미나게 놀았다. 한낮이 되도록 배고픈 줄도 모른 채 놀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자,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나뭇잎을 발로 차버리고 기와 조각을 내던진 다음, 아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먹였다. 그러자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서 밥을 먹지 않은 채 그 놀이를 망친 것을 몹시 원망하였다. 아, 기와 조각과 나뭇잎을 가지고 놀면서 종일토록 먹지 않았으면서도 참으로 먹는 것을 잊었으니, 이것은 미혹된 것이다.
[원문]
童子纍石防溪。輒潰不成。奔請里中兒。與俱積草蔓。築土塡沙。㕦若謠禦若敵。苦身不息半日然後塞。須臾水衝撞盈縈。溢于西决于東。土流而草洑。童子盡失其功。猶謂水終可遏。愈壅而愈沛。噫。不量力矣。
羣兒見帋鳶低且落。將往攫之。一兒近者先得。羣兒不覺已爲人得。走不已。疲仆喘汗。旣至而無得。猶昂視天。復求低落者。噫。徒勞爾。
兒曹聚而爲市。列瓦礫衆器。擷葉當貨財飮食。往來販鬻。驩號爲樂。日晡忘飢不歸。家長者蹴葉投瓦去。驅兒歸與之飧。兒啼不食。大望敗其事。噫。瓦礫與葉。終日不飽。乃眞忘飮食。惑也。
- 이의숙(李義肅, ?∼1807), 「잡설(雜說)」, 『이재집(頤齋集)』
▶윤덕희(尹德熙, 1685~1766)의 공기놀이
『한국의 미19, 풍속화』에서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조 때의 학자이면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개령 현감(開寧縣監)을 지낸 이재(頤齋) 이의숙(李義肅)이 지은 글이다. 이 글에는 세 바보 아이가 나온다. 한 아이는 시냇물을 막으려고 하였다. 이는 애당초 그 아이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시냇물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한 아이는 다른 아이가 이미 주워가지고 간 연을 찾기 위해 온종일 찾아 헤매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주워가지고 간 연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한 아이는 소꿉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밥 먹는 것도 잊었다. 소꿉놀이에서 먹은 가짜 밥이 어찌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아이들은 모두 바보짓을 한 것이다.
이 글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바보짓을 하는 것이 어찌 이 아이들뿐이겠는가?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일생을 허비하고, 뜬구름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헛된 것을 꿈꾸면서 한평생을 보내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미혹되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치는 짓을 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나 역시도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있다.
자신이 머리가 좋고 운도 따른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변두리에 있는 ‘빠찡꼬’에 들렀다. 운이 좋았는지 조금 땄다. 다음날도 갔다. 역시 땄다. 자신감이 붙었다. 조금 더 욕심이 생겼다. 크게 따고 싶었다. 남들이 다 천하무적의 절대 신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카지노라는 괴물에게 도전하였다. 그 날도 역시 운이 좋았는지 조금 땄다. 카지노조차도 우습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생업이 지겨웠다. 카지노라는 괴물과 싸워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가지고 카지노로 갔다. 처음에는 이길 것 같았으나, 끝내 지고 말았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약이 올랐다.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아는 사람들은 물론, 사채업자에게도 빌려 두둑한 자금을 마련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며칠 동안 눈에 핏발이 서도록 싸웠으나, 탈탈 털리고 말았다. 빚쟁이와 사채업자가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노숙자가 되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하찮은 무공 실력을 가진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절대 신공을 가진 카지노라는 괴물을 이기려고 한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멋진 몸매만이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얼굴이나 몸매 역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런대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신의 얼굴과 몸매에 대해서 불만이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을 닮은 모습이 되고 싶었다. 부모를 졸라 성형 수술이라는 것을 해서 눈을 고쳐 보았다. 전보다는 한결 더 아름다워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눈은 아름다워졌으나, 자신의 전체 모습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다른 곳도 성형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형 수술에 드는 비용이 문제였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싼값에 성형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는 곳이 있었다. 불법 수술을 하는 곳이었다. 겁이 좀 나기도 하였으나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불법 수술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 온몸을 다 뜯어고쳤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뜯어고쳤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불법 수술을 한 부분이 문제였다.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한 곳이 일그러지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부위가 일그러졌다. 드디어는 애초의 자신보다 훨씬 못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이 사람은 한갓 헛수고만 한 것이다. 자신의 내면은 가꾸지 않고 억지로 외모만을 가꾸다가 외모마저 망쳐버린 것이다.
자신의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남들이 무어라고 하건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는 맹목적이었다. 자신의 종교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안락하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자신의 가족이 고통을 당하는 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을 걱정하여 충고해 주는 사람들의 말이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만 부르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그 사람들을 애처롭게 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도록 이끌어 주려고 하였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과 그 신의 대리자라고 하는 지도자의 말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였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었고, 내일 지옥 불이 떨어져 세상이 종말을 고한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 바쳤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은 피폐해졌고, 지도자란 사람은 싸늘하게 대하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 사람은 헛된 것에 미혹된 것이다. 성실하게 살면서 자신의 삶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지도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은 것이다.
성현들은 이미 모두 몸 죽었으나,
남긴 훈계 서책 속에 들어있다네.
마음 가라앉히고서 그 말 외우면,
미혹된 게 시원스레 확 트여지리.
누가 고금 다르다고 말을 하는가,
천년세월 서로 격해 있지 않다네.
좋은 때를 허송하면 후회할 거고,
늙어서는 힘을 쓰기 어려울 걸세.
그댄 보라 저 위나라 무공께서는,
아흔 살에 억계의 시 지으셨다네.
聖賢旣已歿
遺訓在簡策
潛心誦其言
豁然開迷惑
孰云古今異
千載如不隔
良時悔虛度
遲暮難自力
君看衛武公
九十猶抑抑
이 시는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쟁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자경(自警)」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억계(抑戒)의 시’는 춘추 시대 때 위나라 임금인 무공이 지은 시로, 『시경』에 나오는 「억(抑)」이란 시를 말한다. 무공은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지어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경계하였는데, 그 내용은 주로 위의를 삼가고 언행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주위에서 무언가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보면, 노력 없이 허투루 얻거나 거저 얻은 사람은 없다. 큰돈을 번 것도 일확천금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학문을 이룬 것도 머리만 좋다고 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이름난 예인(藝人)이나 장인(匠人)이 되는 것도 재능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평생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여 이룬 것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이루어 준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글쓴이 : 정선용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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