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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자기를 스스로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존칭으로 ‘하’(下)자를 붙인다. 이 하(下)는 그 존대하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이나 위치를 아래서 우러러 본다는 뜻에서, 공간위상(位相)을 전제하여 상대방을 존경하는 의미의 존대 말이 형성되었다.

황제가 집무하는 용상에 오르는 계단을 폐(陛)라 하여, 폐하(陛下)는 섬돌 층계 아래라는 말이다. 섬돌 층계 저 아래에 엎드려 우러른다는 뜻이다. 경복궁에서 왕이 집무하는 집을 근정전(殿)이라 하여, 전하(殿下)는 전각 아래에 엎드려서 우러른다는 뜻이다. 가톨릭에서는 추기경을 높이어 일컫는 말이기도 하며, 성하(聖下)는 성스러우신 분 아래라는 뜻으로 가톨릭에서는 교황을 높이어 일컫는 말이다.

전각보다 낮은(지붕의 높이가) 저택에 사는 왕자 등을 저하(邸下)라 부르는데, 저하(邸下)는 저택 아래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 왕세자를 높이어 일컫던 말이다. 대원군의 호칭을 합하(閤下)라고 했는데 정 1품 이상의 정승을 말하며, 정승이 집무하는 거처를 각(閣)이라 하여, 각하(閣下)는 누각 아래에서 엎드려 아뢴다는 뜻이다. 보통은 정 2품을 각하라 했으니, 고 박정희 대통령을 각하라 했던 것은 일본식으로 잘못 불러졌던 것이다.

사신은 타는 수레를 상징하여 곡하(下)라 했고, 당하(堂下)는 대청 아래로 정삼품 이하의 관직(당하관)에게 사용 됐으며, 일선에서 지휘관이 쓰는 대장기(大將旗)를 휘(麾)라 하여 휘하(麾下)는 대장의 깃발 아래라는 뜻이며, 장막의 아래라는 뜻으로 장군에 대한 경칭으로 막하(幕下)라 부르기도 한다.

존하(尊下)는 존경하는 분, 귀하(貴下)는 귀하신 분 아래라는 뜻으로 편지글에서 상대편을 높이어 그의 이름 뒤에 쓰는 말이다. 궤하(机下)는 책상 또는 탁자 아래로 스승에게 사용하였으며, 슬하(膝下)는 자신이 부모의 무릎 아래에 있다는 뜻으로 부모를 우러러본다는 존칭이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 간에도 자신이 친구인 상대방보다 낮게 있다 하여 족하(足下)라 불렀으니, 족하(足下)는 발아래라는 뜻이다. 이렇듯 수도 없이 많은 아래 하(下)자를 자신에게 붙임으로 스스로를 독려하고 마음을 수양했을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가을이다. 근정전 뒤편의 후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勤政’과 ‘下’의 의미를 늘 되새겨 혹시라도 되바라지지 않도록 늘 심신을 단련하며 수양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