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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214] 외로운 나무에 핀 꽃

작성일
12-04-19 00:01
글쓴이
퍼스나콘 양두구육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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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봄이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에 아직 초록은 보이지 않고 간간이 홀로 피어 있는 복사꽃, 살구꽃만 유난히 눈에 띈다. 작은 나무에 핀 꽃일수록 더 또렷하고 사랑스럽다.


문득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


라고 노래한 두보(杜甫)의 시구가 생각난다. 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단 한 구절로 이토록 잘 그려 놓다니. 정녕 한 폭의 작은 그림이다. 좋은 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우리 가슴에 오래 남아 있다가 뜻밖의 정경을 만나면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곤 한다. 내가 이 시구를 특히 좋아하는 까닭은 이 뿐만은 아니다.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향기로운 삶을 사는 군자의 모습이 외로운 나무에 핀 꽃과 겹쳐서 떠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선생이 신유년(1561) 3월 그믐에 계재(溪齋) 남쪽으로 걸어 나와 이복홍(李福弘), 덕홍(德弘) 등을 데리고 도산(陶山)으로 가다가 산 위의 소나무 아래 잠시 쉬셨다. 당시 산에는 꽃이 활짝 피었고 내 낀 숲은 봄기운이 아련하였는데 선생이 두보(杜甫)의 시구를 읊으셨다.

    소용돌이 물에 목욕하는 해오라기는 무슨 마음인가
    외로운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


  덕홍이 묻기를

“이 시의 뜻이 어떠합니까?”
 

하니,



선생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군자가 목적을 두어 작위(作爲)하는 바 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이 이 뜻과 은연중에 합치한다.”


하셨다.



“해오라기가 목욕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겠습니까. 꽃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향기를 풍기니, 누구를 위해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선생이



“이것이 목적을 두어 작위하는 바 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학자가 모름지기 이 이치를 체험하여 바른 의리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정도를 밝히고 공효를 따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시구의 꽃, 해오라기와 다름이 없겠지만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목적을 두어 작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학문이 아니다.”
 

하셨다.





  완락재(玩樂齋)에 이르러 절우사(節友社)의 매화 아래 앉아 계시는데 어떤 중이 와서 남명(南冥)의 시를 바쳤다.


선생이 몇 번 읊조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분의 시는 으레 몹시 특이하고 어려운데 이 시는 그렇지 않구나.”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차운하여 주시고는 또 절구 한 수를 지으셨다.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은 고요한데
    새는 시냇가 나무에서 울고 물은 잔잔하네
    우연히 산 뒤쪽으로부터 동자 어른들 데리고
    한가히 산 앞에 이르러 고반(考槃)을 바라본다

  덕홍이 묻기를


“이 시에는 기수(沂水) 가에 노니는 즐거움이 있어 일상생활 중에 천리(天理)가 위아래에 다 같이 막힘없이 유행(流行)하는 오묘한 경지가 있습니다.”

하니,


선생이


“이런 뜻이 조금 있긴 하지만 추측하여 말한 것이 지나치게 높다.”


하셨다.


 
[先生辛酉三月晦, 步出溪齋南, 率李福弘德弘等, 往陶山, 憩?頂松下一餉間. 時, 山花灼灼, 煙林靄靄; 先生詠杜詩“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之句. 德弘問: “此意如何?” 先生曰: “爲己君子無所爲而然者, 暗合於此意思.” 問: “鷺浴爲誰潔己? 花發自在而明, 自在而香, 曾爲誰而然也?” 先生曰: “此無所爲而然者之一證耳. 學者須當體驗, 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則與花鷺無異矣. 若小有一毫爲之之心, 則非學也.” 到玩樂齋, 坐節友社梅下. 有僧進南冥詩; 先生吟詠數遍曰: “此老之詩, 例甚奇險, 此則不然.” 因次以贈, 又作一絶云: “花發巖崖春寂寂, 鳥鳴磵樹水潺潺. 偶從山後携童冠, 閒到山前看考槃.” 德弘問: “此詩有沂上之樂, 樂其日用之常, 上下同流, 無所滯?之妙也.” 先生曰: “雖略有此意思, 推言之太高耳.”]


  
 
- 이덕홍(李德弘 1541~1596),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만년의 일상을 제자인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이 기록한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복홍은 이덕홍의 셋째 형이다. 계재(溪齋)는 지금의 퇴계 종택 서쪽에 있던 서재로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곳이었는데, 계남재(溪南齋)로도 일컬어졌다. 지금도 이 계재가 있던 지점에 산을 넘어 도산서당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소용돌이에 목욕하는 해오라기는 무슨 마음인가. 외로운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


는 두보(杜甫)의 시 <수(愁)>에 나오는 구절로 원래는 자신은 몹시 시름겹거늘 자연의 경물은 무심하기에 시름이 더욱 깊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무심한 자연 경물과 대조시킴으로써 자기 시름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인데, 퇴계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고결하고 향기로운 삶을 사는 군자의 모습에 비겼다. 자신의 심경과 봄경치가 만나면서 문득 이 시구가 떠올랐으리라. 생각해 보면, 이덕홍의 말처럼 해오라기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 자신을 깨끗이 목욕하는 게 아니요 꽃은 찾아주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향기를 풍기고 있으니, 진정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간명하게 묘파한 말이 또 있을까.




“바른 의리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정도를 밝히고 공효를 따지지 않는다.[仁人者 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는 것은 한(漢)나라 학자 동중서(董仲舒)의 말이다.

  완락재(玩樂齋)는 퇴계가 거처하던 곳으로 곧 도산서당 본채인데 이 때는 아직 완공되지 못했다고 이덕홍이 주석에서 밝혀 놓았다. 절우사(節友社)는 완락재 바로 앞의 왼쪽 산기슭에 매화,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어 놓은 곳을 일컫는 말이다.

  남명 조식(曺植)이 퇴계에게 시를 보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남명과 퇴계, 양현(兩賢)이 주고받은 당시의 시는 찾아볼 수 없다. 옛날에는 행각(行脚)하는 승려들이 시권을 갖고 다니면서 명사들의 시를 받기도 하고 편지와 시편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위 퇴계가 읊은 절구는 문집에 <걸어서 계상으로부터 산을 넘어 서당에 이르러[步自溪上踰山至書堂]>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퇴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시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읊었을 뿐이라 일견 단조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오히려 자신의 상념을 개입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그대로 그려낸 데에서 이 시의 큰 울림이 나온다. 이덕홍은 천리(天理)가 위아래에 유행(流行)하는 경지를 표현했다고 하여 굳이 성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였지만 이는 시를 분석한 견해일 뿐이다. 퇴계가 애초에 이런 의도를 갖고 이 시를 지었을 리는 없다. 우연히 본 경치를 그대로 읊어놓은 작품인데도 오래 두고 욀수록 작자의 깊은 정신세계가 느껴지면서 더 좋으니, 묘하다.

  고반(考槃)은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편명으로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뜻한다. 여기서는 도산서당을 가리킨다.



‘기수(沂水) 가에 노니는 즐거움’은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의 고사에서 온 것이다.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했는데,



증점이


“늦은 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면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하였다.


세상에 구함이 없는, 군자의 은일(隱逸)한 삶을 잘 드러낸 것이다.

  올해는 꽃 소식이 늦어져 북한산에는 엊그제부터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다. 꽃은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다. 똑 같은 꽃인데 언제 어디서 보아도 사랑스러운 것은 꽃이 우리에게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봄바람을 타고서 자연이 베푸는 향연이 산과 들에 펼쳐지고 있다. 꽃을 보면서, 자연의 무심한 아름다움에서 배우는 가르침이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글쓴이 :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주요저서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주요역서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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