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타선, 작전, 그리고 양감독(스압)
- 작성일
- 11-04-19 14:28
0.
연장전에서 원정팀의 선두타자가 안타로 출루하고 보내기번트로 2루로 갑니다.
홈팀은 다음 타자를 고의사구로 내보냅니다.
타석에는 오늘 무안타인 장타자가 들어섭니다.
1-1 볼카운트.
해설자는 입에 침이 마를세라 타자는 우측으로 쳐야 한다고 반복합니다.
2루주자가 도루 능력이 있어서 그걸 견제한다고 2루수가 루에 붙어 있기 때문에 우측 공간도 넓다구요.
제3구 포크볼이 낮은 아웃코스로 떨어집니다.
타자는 그걸 반쯤은 골프치듯이 걷어올립니다.
하늘에 뜬 공을 보며 캐스터는 외칩니다. '좌익수' 뒤로 뒤로 뒤로~ 넘어갔습니다!!
1.
손아섭이 오늘 복귀한다죠?
물론 복귀한다고 해도 '외야수'로 정상 출장 가능할 지는 미지수라고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손아섭의 복귀는 롯데 타선에 상당한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외야수'로 출장할 때 이야기지만.
손아섭이 그렇게나 롯데 타선에 비중이 큰 타자였냐면 그건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아섭의 복귀가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는 크지 싶다는 겁니다.
이번 주말 드디어 SK를 만나죠.
SK와 경기하다 보면 그 팀 타선에 대해서 저는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SK타선엔 이대호도 없고 이대형도 없습니다(이대형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하지만 SK타선은..
어디서 장타가 나오고 누가 도루를 하더라도 별 이상하지 않은 그런 타선이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바로 SK타선의 힘이로구나 싶지요. 어디서든 찬스가 만들어질 수 있고 누구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될테니까요. 또 이런 타선이기 때문에 타선의 유연한 조정의 여지가 많은 타선이기도 하다 싶구요.
비슷한 컬러인데 아직은 SK보다는 살짝 컬러가 엷은 게 LG가 아닌가 싶구요.
롯데의 타선은 이와는 반대 방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테이블-중심타선-하위타선이라는 고전적인 타선 구성에 아주 잘 들어맞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테이블이 잘 돌아가고 중심타선엔 아예 3-4-6 찍는 넘 두 넘 모두 있고 하위타선도 설겆이 꽤 열심히 해 주고 이렇게 돌아갔던 게 역대 득점 3위라는 작년 최강타선의 위용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고전적인 타선의 역할 구분이 아주 잘 수행되어서 대성공을 거둔 예라고 보이는 거죠.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한 쪽이라도 잘 안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위력이 꽤 감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08-10년의 타선의 대폭발과 09년의 상대적 침체의 큰 원인 중의 하나는 2번타순(조금 더 본다면 3번타순)의 차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구요.
올해 초반 타선의 침체에도 2번 타순의 문제가 꽤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럼 작년에 홍성흔 빠지고 6연승한 건 뭐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그 땐 홍성흔이 빠졌지만 조성환과 강민호가 남아 있었죠. 조성환까지 빠진 다음의 경기들에선 이기긴 했어도 투수력으로 이기는 경기들이 꽤 많았구요)
작년 롯데와 쌍벽을 이루었던 두산의 타선도 이 점에선 롯데 쪽 컬러가 근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두산은 그러면서도 SK쪽 컬러를 가미한 편이라면 롯데는 그런 컬러가 별로 없어보인다는 게 차이랄까요.
2.
올해 롯데는 '작전'을 두고 왈가왈부가 많기도 합니다.
야구에서 작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보기엔 두 가지 의미가 겹쳐 있다 싶습니다. '정석'과 '묘수'라고나 할까요?
이런 패턴으로 가면 점수가 날 확률이 높다라고 오랜 경험을 통해 정립되어 있는 '정석'이란 의미 하나.
뭔가 빈틈이 보이거나 예측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허를 찌른다는 '묘수'란 의미 하나.
아마 보내기번트는 거의 '정석'에 가까울 거고,
히트짜 들어가는 작전 같으면 방식은 '정석'이겠지만 타이밍은 '묘수' 쪽에 가까울 거고..
스퀴즈번트쯤 되면 방식이고 타이밍이고 모두 '묘수'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런데 '기본' 소리를 듣는 보내기번트나 정말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 스퀴즈번트 같은 걸 빼면...
일반적으로 '작전수행능력'이니 '팀배팅'이니 등이 필요하다고 하는 작전들은 결국 배트에 볼을 맞춰야 가능한 작전들이겠죠.
아닌 말로, 소위 '팀배팅'을 시킨다고 해도 이대호가 문규현보다 더 잘 하겠죠. 다만 이대호에게 '팀배팅'을 시키는 건 낭비일 뿐이니까 안 하는 거지.
그리고 가능하면 주자의 주력도 어느 정도 있을 때 작전의 성공이나 후속 상황 통제가 쉽기도 할 테구요. 히트앤드런으로 이대호 2루에 보냈다고 한들 장타 없으면 불러들이기가 쉽겠습니까.
그렇다면 좀 비약이 될 진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작전수행능력'의 상당 부분은 훈련과 실전 적용을 통해서 키워질 수 있겠죠.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작전수행능력'과 작전수행의 효과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SK컬러'가 '롯데컬러'보다 더 높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3.
달랑 13경기했으니 벌써부터 감독 스타일을 논한다는 건 시기상조인 건 알지만...
어쨌든 그 13경기에서 양승호 감독이 보여 준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이기기 위해서 이것저것 하고는 있는데 그게 아직은 잘 안 먹히고 오히려 이것저것하는 모습이 '허겁지겁'으로 보일 때도 있는 그런 모습이랄까요.
그렇게 '이것저것'하다가 보니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작전'이란 게 또 왈가왈부의 대상이 되고 있죠.
뭐 작년 롯데가 작전 잘 해서 점수 났냐 어차피 작전능력 떨어지는 대신 타격능력은 상당하니 타격으로 밀여붙여라 이런 이야기들이 반드시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작전능력도 있으면 좋은 거긴 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양승호 감독이 사용한 '작전'들을 돌이켜 보면...
그 성공률은 둘째 치고라도, 그 '작전'들이 앞의 표현을 다시 쓰면 거의 '정석'이기만 했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정석'을 사용했으니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설령 그 '정석'이 성공한 경우라도 오히려 그 다음 상황은 '후속타불발'이 될 가능성이 꽤 있는데도 '정석'만 사용한 경우들이 꽤 보인달까요. 뭐랄까. 공부 잘 하는 우등생이긴 해서 '정석'은 사용을 잘 할 줄 아는데 '정석'을 사용할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은 아직 미흡해 보인다고 할까요(사실 그 '정석'의 영역만 따지면 작년의 롯데가 아주 능력이 떨어졌던 것도 아니죠. 희생번트의 경우만이긴 하지만, 작년 롯데가 희생번트 숫자는 7위인데 성공률은 1위였다죠?)
예 하나만 들면, 지난 목요일 두산전 1점차 뒤진 8회. 선두타자 출루 후 보내기번트. 이건 '정석'은 맞죠.
그런데 번트 댄 타자는 박종윤. 그날 멀티히트하고 있었던 좌타자인데다가 상대 투수는 옆구리 고창성.
그래서 상황은 계속 이어져 결국 찬스는 이승화에게 걸리고 그대로 무산되었죠.
양승호 감독의 작전이 경기 승리에 꽤 큰 몫을 한 게 지난 일요일 경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5회 1사 1루에서 히트앤드런 걸리고 박종윤의 우전안타로 1사 1,3루를 만들었던 그 장면 말이죠.
그런데 그 때도 생각해 보면.. 소위 '팀배팅'으로 성공시킨 작전이라고 보긴 힘들겠죠. 오히려 좌타자인 박종윤이 적극적으로 당겨쳐서 우전안타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전이었을 테니까요.
서두에 적은 상황을 보고 롯데나 두산팬 분들이면 아마 다들 무슨 장면인가 감이 오셨을 거라 믿습니다.
네, 작년 준플 2차전. 대호가 '턱거돼'홈런을 치던 바로 그 장면이죠.
아마 당시 허구연의 해설, 우측으로 쳐야 한다는 해설이 틀린 건 아니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정석'이라는 점에서요.
그리고 허구연의 해설대로 '우측'으로 쳤더라도 아마 대호는 적시타를 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호는 '좌측'으로 쳤죠. 그것도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볼을.. 그리고 그 볼은 '턱거돼'가 되었습니다.
물론 대호니까 쓰리런이 될 수 있었던 거긴 하지만 말입니다.
달랑 13경기일 뿐이니 앞으로 양승호 감독의 스타일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는 노릇이긴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경기를 이기고 싶다면, 작전을 쓰더라도 그냥 '정석'을 썼다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는 그런 감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석'을 쓸 데와 쓰지 않을 데를 잘 가릴 줄 알고, 이왕 쓰려면 '정석'뿐만 아니라 '묘수'도 쓸 수 있는 그런 감독. 나아가서는 '정석'이건 '묘수'건, 작전야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작전야구가 잘 먹힐 만한, 5툴에 가까운 선수들을 키워낼 수도 있는 그런 감독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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