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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유럽 2006]

제 50탄. 마드리드 : 키보드로 내가 그린 게르니카

작성일
09-04-28 15:07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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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리오 아저씨네 가게로 아빠의 담배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늘 저 멀리 새떼들이 새카맣게 무리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어요.

저는 넋을 잃고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새떼가 아니었어요.

프로펠러가 두개씩 달린 비행기들이였어요. 아주 많이 날아오고 있었어요.

비행기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점점 가까워지더니, 갑자기 폭죽을 터트리기 시작했어요.




폭죽은 할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팜플로냐 여름축제를 구경갔을 때나 볼 수 있는 거예요.

부활절도 아닌데 우리 마을 같은 작은 곳에서 폭죽을 왜 저렇게 많이 터트리는지 이상했어요.

하지만 낮이라서 그런지 불꽃이 별로 예쁘지도 않고 소리만 요란했어요.



저 멀리 빵모자를 쓰신 아두라즈 아저씨랑, 네모리노형이 총을 들고 다른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어요.

길 저편에서는 양조장의 쟈네타 아주머니가 저를 보고 뭐라고 고함을 마구 지르시는데

폭죽소리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주머니는 제가 있는 곳으로 쏜살 같이 달려오시더니,

저를 번쩍 들어 안고 다시 양조장으로 뛰어 갔어요.

양조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문 바로 옆에서 큰 폭죽이 터져서, 아주머니가 다리를 다치셨어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절뚝거리시면서 양조장 지하로 저를 안고 내려가셨습니다.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지하실 술통 옆에서, 아주머니는 저를 꼭 껴안고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계셨어요.

저는 아주머니 품 속에서 숨이 막혔지만, 왠지 빠져나가면 안 될것 같아서 그냥 꾹 참고 있었어요.



위쪽은 폭죽이 터지느라 계속해서 아주 시끄러워요. 속이 울렁거려요.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아요.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었어요.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났어요.

마침내 폭죽소리도 그치고, 저는 오줌이 마려워서 아주머니와 함께 밖으로 올라왔어요.



연기냄새때문에 눈이 막 매워요.

양조장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지고 하늘만 보여요. 다른집들도 전부 다 불이 나서 무너졌어요.

온 사방에 동네사람들이 나와 있어요.

피가 나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길 바닥에 누워서 가만히 잠들어있는 사람도 많아요.

쟈네타 아주머니 손을 잡고 우리집으로 가 봤지만,

우리집이 있던 자리도 할머니 방 쪽의 벽 한쪽만 남아 있었어요.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와 삼촌도, 아디나 누나도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저를 다시 꼭 껴안으시더니,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아까부터 피가 계속 흐르는 아주머니의 다리를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서 그만 함께 엉엉 울어버렸어요...


















아래서부터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어느 나라의 이야기다.


1. 20세기들어 기존의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들어서지만, 정부는 계속된 실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2. 혼란해진 국가를 바로 잡겠답시고 군부가 내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3. 1인 독재체제가 펼쳐진다.

필요하다면 국가 기본 이념인 헌법마저 바꿔 가며, 자유를 담보로 질서를 확립한다.

저항하려는 세력은 쥐도 새도 모르게 숙청 되고, 지식인층은 굴복하거나, 망명을 택한다.



4. 추후에 독재시대는 막을 내리지만 국가의 정치제도는 이미 한참을 후퇴했기 때문에,

이윽고 민주주의가 찾아들게 되더라도 오랫동안 크나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비단 우리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칼, 터키,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미얀마, 이라크 등

20세기의 많고 많은 나라들이 이런 군부독재정권의 지배를 경험했다.

꿋꿋이 버티고 일어선 몇몇 나라도 있지만, 쫄딱 망해버린 나라도 많다.



많고 많은 독재자들 중에서 우리나라 독재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경제 하나는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았냐는 주장인데,

여행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지는 한이 있어도 여기에 온전히 수긍하지는 못하겠다.



한국에 독재정권이 들어선 6-70년대는 우선 세계 경제 자체가 대호황기였던 데다가,

소련과의 냉전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미국의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게 얻어낸 침략 보상금도 산업에다 투자하기에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또한 개별 노동자를 핍박하고 기업만을 살찌워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구조와,

'정경유착'의 끊을 수 없는 고리를 만들어낸 비뚤어진 경제성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강의 기적'으로 순수하게 칭송 받을 일만은 아니다.


물론 기껏 정권을 잡아 놓고서 국가는 나몰라라 제쳐 두고

자기 배를 채우는데만 열정을 쏟았던 다른 독재자들과 비교한다면야,

우리 군인 황제 아저씨의 투철한 애국심 만큼은 진심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각설하고, 스페인에도 그 여느 나라 못지 않은 진상 독재자 프랑코가 있었다.

스페인 공화정이 혼란한 틈을 타 내전을 일으킨 프랑코 장군을 돕기 위해,

히틀러의 독일군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3시간동안 무려 30톤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

6,000여명의 마을 인구 가운데 2,500명이 죽거나 다쳤고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사실 게르니카는 이렇다 할 군부대도 없었고, 무기래봐야 기관총 한정만 달랑 있어서 전략적인 가치는 전혀 없는 곳이다.

하지만 프랑코의 입장에서는 걸핏하면 자신에게 반대를 일삼으며

번번히 독립을 외쳐대는 근본도 없는 바스크 민족을 응징할 더 없이 좋은 기회였고,

독일로서도 곧 일어날 제2차세계대전에서 쓰기 위한

무기들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한 실전 시험무대가 필요했으니,

이 어처구니 없는 두 이해관계가 만나 이런 희대의 민간인 대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 당시에 빠리에서 머물다가 이 소식을 전해들은 쁘라도 미술관장 피카소는 격노하여

우울증 탓으로 수 년 동안 놓고 있던 붓을 다시 꺼내들었다.

나이를 잊은 노화백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수십개의 습작을 그려가며 한달 동안 화실에 푹 빠진 결과,

8미터에 가까운 너비와 3미터를 훨씬 넘는 높이의 초대형 캔버스에 이 대작이 완성 되었다.



독일군이 빠리를 점령하고, 독일군 장교가 피카소의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단다.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린 사람이요?" 라는 물음에 피카소는

"아니요. '게르니카'를 그린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피카소의 대표작들 중 하나가 된 그림 '게르니카'는 1937년 프랑스 만국 박람회를 시작으로 

스페인 공화정의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전세계를 돌며 프랑코와 파시스트의 잔혹성을 알렸는데,

정작 프랑코 치하에서 고문과 탄압이 횡횡하던 스페인으로는 50년 동안 들어 올 수 없었단다.

그리고 프랑코도 죽고, 피카소도 죽었다.

피카소의 유언대로 스페인 땅에 민주주의가 찾아 든 지금에서야,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비 미술센터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소피아 왕비 미술센터의 게르니카 앞에 직접 서자 뭔가가 몸 주변을 확 에워싸는것 같다.

폭격기나 군인, 총 하나 없는 그림인데도 비행기의 굉음이라든지 난사되는 기관총 소리,

폭탄이 터져 집들이 무너지고 나무가 불타는 소리, 마을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다.




오디오가이드도 없이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도

게르니카 마을의 분노와 슬픔이 그대로 전해온다.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도, 희재도, 이 세기의 걸작 앞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4-28 23:37:04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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