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베이스볼파크 전광판 내용
베팍 다시 잘 해봅시다!

relay

모바일 URL
http://m.baseballpark.co.kr
대표E-mail
jujak99@hanmail.net
[삐딱한 유럽 2006]

제 52탄. 로마 : 로마는 하루 아침에 가면 안된다.

작성일
09-04-30 08:46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IP
122.♡.♡.128
글쓴이다른 게시물 보기
추천
2
조회
8,512
댓글
7단계
시간별 역순 댓글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희재와 나 사이에 작별의 키스 같은건 없다.
여느 때처럼 무덤덤하게 “서울에서 보자.”라고 손만 몇 번 흔들어 주고,
나는 출국게이트로 나선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해외여행체질은 아닌 가 보다.
항공성 중이염이라고, 비행기가 이착륙 할 때마다 귀가 멍하면서 무척 아프다.
비행기 고도가 갑자기 변하면서 기압도 따라 변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내 주위의 기압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내부의 공기가 다 변할 텐데,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코를 도르릉도르릉 골면서 잠까지 자고 있는데
왜 불공평하게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스튜어디스가 시키는대로 물 마시고, 하품하고, 껌도 씹으면서 용을 써 봐도
별로 효과를 모르겠다.
몇 번 만 타면 금방 익숙해진다던데, 인천에서 런던으로 날아오면서
환승도 두 번이나 했었고 저가항공을 타는 것도 벌써 세 번째지만 귀가 아픈 건 매한가지다.
비행기 몇 번씩 타면서 체득한 것이라면,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나 이제 그만 여기서 내려달라고 할 수가 없으니
아무리 괴로워도 그냥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야 한다는 것 정도?
이럴 줄 알았으면, 효율적인 동선 어쩌고 하면서 저가항공을 세 번이나 예약해 오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이놈의 비행기 다시는 타나 봐라 하는 후회를 마흔세 번 정도 했을 때쯤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 앉는다.
지긋지긋한 비행기를 나서니, 결코 낯설지 않은 정글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지저분한 공항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설 줄도 모르고 알 수 없는 말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하고, 입국 수속대 직원은 여권 검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출구를 물어봤지만 안내도 건성건성 불친절하기가 그지 없다.










공항을 빠져 나오니 이번에는 택시기사가 택시를 타라면서 끈덕지게 달라 붙는다.
동양인을 봉으로 알고 던지는 곤니찌와라는 인사는 이제 그만 좀 듣고 싶다.
끝까지 따라오는 택시기사들을 간신히 쫓아내고,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를 타지만,
역도 아닌 곳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폼이
이번에도 역시 제 시간에 도착하기는 글러 먹은 듯 하다.
한숨을 푹 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탈리아 맞구나.”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서도, 로마다.
결국에는 로마로 왔다.
우리 로마시민들은, 내가 혹여 비행기를 잘 못 탄게 아닐까
의심이라도 할까 봐 자기네들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야구에서, 마지막으로 교체되어 올라와서 경기를 끝내 버리는건
가장 잘 던지는 투수의 몫이다. 예전
‘나고야의 태양’ 선동렬이 그랬고,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의 김병현이 그랬다.
경기를 끝내는 일을 '장사 끝났고 문 닫으니 집에 가라'는 의미로 shut out이라 하고,
이 shut out을 맡는 투수를 가리켜 closer라 한다.
내 여행을 shut out 해 줄 closer는 로마였다.





중학교 때, ‘유럽’이라는 검색어에 36.6kbps짜리 모뎀이 천리안을 통해 보여준 그림파일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성베드로 성당의 장엄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서 유럽이라는 이미지는 곧 로마였고,
‘유럽 간다’하는 말은 곧 ‘바티칸 보러 로마간다’라는 뜻이 되었다.
내게는 로마가 선동렬이었고 김병현이었다.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으뜸패였다.






그러니 아웃도시는 로마여야 한다.





로마를 먼저 보고 나서 다른 곳을 갔다간,
로마 이후로 간 다른 여행지들이 죄 시시해지게 될테니까.
생돈 8만원을 써서 루트를 일그러뜨려가며 마드리드-로마구간 비행기표를 예약해 왔다.









로마제국의 문화는 서양 문화의 초석이 되어,
중국과 더불어 세계 문화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전 인류의 문화유산 60퍼센트가 이탈리아에 집중 되어 있는데
로마는 그런 이탈리아의 심장부니까 말 다 한 셈이다.





아닌게 아니라 로마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고개를 돌리면 지은지 500년도 더 된 베네치아 대사관이 있고,
또 그 옆으로는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말년을 보냈다는 궁전이 있다.
슈퍼마켓 맞은편에 있는 별 볼일 없어 뵈는 교회도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으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하는 정도의 이야깃거리는 가지고 있는 식이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볼거리만 있는게 아니라,
가이드 북에서는 특히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것만을 최소한으로 추려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루브르에서 눈 뜬 장님이 된 것은,
아는 그림이라고는 모나리자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고대 로마 사람들의 생활상이 화산재 아래에서 그대로 보존된 타임캡슐인 폼페이만 해도,
보는의 사전 지식이 어떠냐에 따라서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기도 하고,
그냥 오래 전에 망한 나라가 남겨 놓은 돌무더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물며 천년 역사가 찬란히 빛나는 대제국의 수도 로마를
제대로 보고 느끼기에는 알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시간이 부족해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바티칸 박물관과 로마 시내로 나누어지는 가이드투어를 다들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가이드의 입담이 아무리 좋아도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만에 다 쏟아놓기는 역부족이니. 천상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해 와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











로마에 관한 읽을만한 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역시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시리즈다.
변방의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광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었는지,
그런 로마를 이끈 지도자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제국의 이야기를 전에 없이 생생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국내에서도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는 책은 삼국지와 토지, 그리고 태백산맥 정도에 불과하다.
장장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기가 질릴 수 있지만,
시간이 없으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가장 재미 있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이 담긴 4, 5, 6권만 읽으면 된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 읽으면 안된다. 
일본 제국시대에 태어난 작가 할망구의 묘한 사고방식 덕에 역사관이 혼란해 질 위험이 있으니까.
















로마인이야기만큼 쉽고 재미 있으면서도 자세한 책이 없긴 하지만,
제국주의와 영웅주의에 흠뻑 빠진데다가,
여자인데도 골수 남성우월주의자인 작가가 지극히 편향된 역사관을 보이고 있는게 문제다.
로마제국은 대단히 우수한 사회제도를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번영 했지만,
그 이면에는 쾌락, 폭음, 사치, 잔혹성처럼 풍요속의 타락한 구석도 무척 많다.
로마에 대해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노예들의 희생이나 원형 경기장에서의 잔혹성,
무절제한 성생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입 싹 닦고 그저 로마를 찬양하고 변호하는데만 급급하다.







특히 줄리어스 시저, 즉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작가의 연모는 끝이 없다.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 땅을 점령하고, 로마제국이 고도성장기에서 안정기로 접어들기 위한
종신 독재제도를 만들어 낸 것을 생각하면 여러 방면에서 능력이 출중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탈리아 전역을 포함해 스페인, 프랑스, 영국 남부와 독일까지 통치한 최고의 지배자인 카르사르는,
작가 말마따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인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도 결점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못된 짓도 많이 저질렀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는 연결고리가 카이사르라고는 하는데,
이걸 뒤집어 말하면 카이사르야 말로 공화정을 몰락시킨 일등역적이 되는 셈이다.
자기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백만 명이 훨씬 넘는 갈리아인과 게르만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판 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자기 돈과 남의 돈을 구분 할 줄 몰랐던지라 빚을 산더미처럼 남긴 채 죽은데다가,
그 빚보다도 어마어마한 권력의 공백 때문에 카이사르 사후에는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충분히 암살당하고도 남을만한 인물일텐데,
로마인이야기는 이런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들을
매끄러운 필력으로 자연스럽게 건너 뛰어 버린다.






출처가 분명하지 못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도
작가의 ‘글빨’ 앞에서는 절대적인 진리처럼 꾸며지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방대한 영토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황제 한명에게 권력을 몰아 주어야만 했다는 식의 맹목적인 제국주의 찬양이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은 민중이 아니라 한 명의 유능한 지도자라는 엘리트주의도 곧잘 보인다.
위험한 책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는 아주 좋은 책이다.
다른 역사서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강한 몰입도와 재미가 있고,
누구나 로마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보편성’이 있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삼국지처럼 없던 일을 꾸며 내면서
아예 무협소설을 꾸민 것도 아니고 그냥 작가의 역사관이 강하게 반영 된 것뿐이다.
전공자를 위한 역사서라기 보다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니
작가의 주관적인 역사관이 들어간 것을 덮어놓고 타박해서도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유럽과 나’도 반기독교적 급진주의 빨갱이의 삐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다.
다만, 로마인 이야기든 유럽과 나든, 무심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글에 동조하여
로마인이야기만이 진리인양 편협된 사고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는 태도만큼은 분명히 필요하다.











독후감 쓰기 방학숙제가 너무 길었다. 결론은, 로마는 그냥 가면 안된다.
로마인이야기 4,5,6권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고 가야 한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09-05-01 14:11:29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
Twitter Facebook Me2da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418 [Francis의 보드게임] (21)왕을 위해 도시를 지어보자! - 2006년 최고의 화제작 케일러스 [4]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5-12 6148 0
417 [콰렁티] caramel tea #54 [65] 퍼스나콘 아콰렁 05-17 6027 0
416 [콰렁티] ichigo yogurt #53 [37] 퍼스나콘 아콰렁 05-10 5547 3
415 [콰렁티] valencia #52 [31] 퍼스나콘 아콰렁 05-07 5785 1
414 [삐딱한 유럽 2006] 최종탄. 로마 : 최후의 만찬. 에필로그. [20] 퍼스나콘 [눈웃음]젤라거긴안돼 05-04 8825 3
413 [삐딱한 유럽 2006] 제 54탄. 바티칸 : 교황님의 로망도 9회말 역전 만루 홈런 [6] 퍼스나콘 [눈웃음]젤라거긴안돼 05-04 7894 4
412 [콰렁티] 연잎차 #51 [24] 퍼스나콘 아콰렁 05-03 6620 3
411 [삐딱한 유럽 2006] 제 53탄. 로마 : 카이사르의 키가 10cm만 작았어도... [1]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5-01 8889 4
410 [삐딱한 유럽 2006] 제 52탄. 로마 : 로마는 하루 아침에 가면 안된다. [3]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4-30 8513 2
409 [삐딱한 유럽 2006] 제 51탄. 세고비아 : 아버지는 말하셨지 목욕을 즐겨라. [8]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4-29 13420 3
408 [Francis의 보드게임] (20)2005년 멘사가 선택한 게임 - 인지니어스 [10]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8 6686 0
407 [Francis의 보드게임] (19)우리나라의 전력공급 체계를 바꿔보자! - 파워 그리드 [7]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8 7122 0
406 [삐딱한 유럽 2006] 제 50탄. 마드리드 : 키보드로 내가 그린 게르니카 [4]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4-28 8011 2
405 [Francis의 보드게임] (18)D&D가 그립고 균형있고 화려한 RPG를 원하는가? - Descent [14]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7 8057 0
404 [Francis의 보드게임] (17)여의도 콜로세움을 체험해보고 싶으세요? - 디 마허 [4]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7 6660 0
403 [삐딱한 유럽 2006] 제 49탄. 마드리드 :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요. [7]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4-27 7572 3
402 [콰렁티] Le Bonheur de Paris #50 [33] 퍼스나콘 아콰렁 04-27 5142 7
401 [Francis의 보드게임] (16)지중해의 거상이 되자! - 엘 카피탄 [4]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6 6461 0
400 [Francis의 보드게임] (15)2인용 추상게임의 극치 - 기프프 [5] 퍼스나콘 요리시인가필드 04-25 6529 0
399 [삐딱한 유럽 2006] 제 48탄. 꼬르도바 : 타임 투 킬 댓 마더 퍼킹 바스타즈 [4]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04-26 7738 2
<<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
copy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