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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유럽 2006]

제 53탄. 로마 : 카이사르의 키가 10cm만 작았어도...

작성일
09-05-01 09:53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선배거긴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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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로마노에 직접 와서 서 보니 새삼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를 참 잘 했다 싶다.
땅바닥을 뒹구는 대리석 건물 조각들이 불현듯 벌떡 일어나서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당시의 신전, 도서관, 공회당으로 복원 된다.
내 주변으로는 로마식 전통 의상, 새하얀 토가를 입고 샌들을 신은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그 중에 한 명, 나와 눈이 마주친 곱슬머리 못 생긴 청년은 숫제 말까지 걸어온다.





“여~ 이중혀니우스. 잘 지내는가? 요즘 하얀 종아리아에게 구애하더라는 말이 들리던데,
잘 안되나 보지? 오를 수 있는 나무를 쳐다보게나. 하하하.”







…5초만에 떠올린 상상 속의 인물 주제에 건방진 녀석 같으니…







이탈리아에서는 좀 유명하다 싶은 관광지 어디를 가든,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이 이렇게 번듯하니 서 있는 모습을 몰 수 있다.
로마 건국신화를 간략하게 정리 하자면, 전쟁 통에 강물에 떠 내려간 여사제의 두 아들들이,
늑대 젖을 먹고 커서 나라를 세웠으니 그 이름이 로마랜다.











암늑대를 뜻하는 라틴어 Lupa는 창녀라는 뜻도 있다고 하고, 두 형제를 기른 여인이
행실이 좋지 못해서 남자들 사이에 암늑대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와전됐다는 주장도 들려 온다.
여러 사람 입을 타다 보면 창녀가 몰래 키웠다는 말 보다는
버려진 아기들이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가 더 솔깃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신화로 전해지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어느 나라건 건국신화란 모두 자국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허무맹랑한 이야기 뿐이다.
따지고 보면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어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터무니 없기로는 한 수 위다.
하여간 어머니로 적당하지 않기는 매 한가지인 늑대 내지 창녀 밑에서
극적으로 자라난 형제가, 자기네끼리 죽고 죽이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겪어가며
아주 아주 힘겹게 건국한 나라가 로마인가 보다.












그런 로마는 위대했다.
그들은 고대 서구 세계 전체를 정복하고 통치 했으며,
그들이 전파한 문화는 서구 문명의 초석이 되었다.
지금도 유럽사람들은 고대 로마를 현대 유럽의 선조로 생각하여
그리스와 함께 로마 역사를 학교에서 상세히 가르치고 있단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만큼 강력한 나라는 꽤 있었지만 로마제국만큼 위대한 나라는 없었다.
앞서 말 했듯, 나라를 세우는 일 보다는 일관되게 다스리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로마가 위대한 나라였던 것은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같은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영웅들이 자기네가 없이도 로마 사회가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가게끔 만들어 놓고 죽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영웅이라도 100년을 살지 못하지만,
카이사르의 시스템 대로 움직인 로마제국은
네로나 코모두스처럼 못난 황제 아래에서도 몇 백 년 동안이나 번영했고,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 받은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도 그 이후로 천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그 시스템이란 다름 아닌 ‘법’이다.
로마는 전쟁으로 영토를 통일했고, 다시 법으로 제도를 통일하면서 세상을 두 번 통일 했다.
힘으로 윽박지르기 보다는 법률로써 공정하게 다스리는 쪽이 더욱 효과적인 통치 방법인 줄을 알고 있었다.





고대 로마에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빌려간 돈은 갚아야 한다 정도의
정의 관념에 입각한 자연법이 아니라
현대국가의 법률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성문법이 있었다.












이래 뵈도 나는 법대 나온 남자다.
대학교 2학년 때던가, 학과 도서관에서 별 생각 없이 펼쳐본 ‘로마법’에
미필적 고의, 대리권, 정당방위처럼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이는 법률용어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한 기억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독일에서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로 건너온
대륙법자체가 로마법의 체계를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람도 있단다.





아닌게 아니라 로마의 원로원과 민회가 미국 상원과 하원의 기원이 된 것부터 시작해
의회, 상원, 투표, 국민투표, 정무관처럼 오늘날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모두 로마공화국에서 탄생했다.










뭐든 이래라 저래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하는 왕 대신
원로원의원 수 백 명이 모여서 갑론을박 해 가며 민주적인 방법으로 법률을 제정했고,
저놈이 실토 할 때까지 매우 쳐라 하는 고을 원님 대신
재판장과 검사, 변호사, 그리고 평결을 내리는 배심원들이 있었다.
정무관이나 집정관, 호민관 같은 고위 관료는 철저한 임기제로 운영하여 독재를 막았고,
국가 비상사태에는 일시적으로 집정관이 독재관이 되어 전권을 장악 할 수 있었지만
그 기간도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며 공화정을 갈아 엎기 이전에는
6개월을 넘을 수 없었다.












무려 2000년 후, 전혀 긴급하지도 않던 상황에서 내려진 긴급조치가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계속 되던 우리의 모습보다도 훨씬 발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 대통령, 살아 생전 주구장창 내세우던 나폴레옹 보다는
카이사르를 롤모델로 삼은 것도 같다.
젊은 시절에 군인으로서 북쪽의 못된 무리들(갈리아족 / 독립군)을 토벌하면서 경력을 쌓은 부분도 서로 비슷하고,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국가의 새로운 틀을 혼자서 다 짠 점도 그렇다.





심지어는 자기 부하에게 죽는 점이나, 사람마다 적잖이 엇갈리는 사후의 평가까지
어쩜 이리도 닮은 구석이 많을까.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간 시오노 할멈이 대노하지 않을까.
‘자식아 나의 카이사르님은 귀족이었지만 그래도 민중의 친구였고,
게다가 키도 훤칠하셨어!’





하나하나 따지자면 박통은 카이사르보다는 그 이전의 독재관 술라에 더 가까웠고,
로마제국 밖으로 범위를 넓히자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무솔리니나 프랑코에 훨씬 더 근접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초목근피로 연명하던 민족을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 영웅과 비견 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슈퍼히어로가 적합 했을 터.




카이사르를 포함한 몇몇 후보군을 놓고 고민을 한 결과,
작은 키라는 강력한 공통점을 가진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대통령 마케팅의 얼굴로 낙찰되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카이사르의 키가 10센티만 작았더라도…





 


















카이사르가 살해 당한 장소로 짐작 되는 곳,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중들 사이로 칼부림 나기에 적당할 것 같은 풍경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카이사르가 죽은 곳이 정확히 어디건, 여기서 죽은 셈 치고 그렇게 느끼면 된다.
카이사르도 죽어 가면서 이 하늘을 봤겠지.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보다도 더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
죽어서도 그 이름 자체가 황제의 별칭이 된 사람,
2000년 뒤에도 확고부동한 팬과 또 그만한 수의 안티를 거느리고 있는 그 사람은
죽어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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