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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유럽 2006]

최종탄. 로마 : 최후의 만찬. 에필로그.

작성일
09-05-04 14:11
글쓴이
퍼스나콘 [눈웃음]젤라거긴안돼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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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오늘 밤이 지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로마 시내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나보나광장의 세 분수는 몇 번을 봐도 참 멋지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광장 뒷골목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다.





















그저께 로마 시내 투어가이드는 입 안에서 밥알이 마구 씹힌다면서 ‘라이스 아이스크림’을 강력히 추천하던데,

나로서는 도무지 그 맛을 짐작 할 수가 없었다.

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밥알이 씹히는 아이스크림이래봐야 밥을 비빈 투게더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속는 셈 치고 ‘라이스, 많이 많이!!’를 외쳤더니 ‘마니마니? 알았어요.’라는 대답과 함께

듬뿍 퍼 담은 아이스크림이 돌아온다.

점원은 한 술 더 떠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또 오세요.’하면서

제법 정확한 발음을 뽐낸다. 로마에서는 의외로 한국말이 잘 통한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라는게 꽤 있다.

나폴리 다미쉘의 마르게리따가 그랬었는데, 이 녀석도 마찬가지다.

입천장에 걸쭉하게 들러 붙으면서 슬금슬금 녹는 것은 아이스크림이 맞고,

혀를 간지르는 오돌도돌한 것은 쌀이 틀림 없는데,

이 어울릴 수 없는 재료들이 어울리면서 내는 오묘한 맛은,

도무지 설명할만한 어휘를 떠올릴 수 없다.

이탈리아의 음식평론가들은 글 쓰고 살기 참 힘들 것 같다.





















얼음과자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서 우리 엄마 얼굴에 주름이 난다는데,

로마에서는 작정하고 불효를 해야한다.

이름난 젤라떼리아가 한 두 군데 정도면 또 모르겠는데,

로마가 워낙에 크고 오래 된 도시다보니 맛있는 아이스크림집도 도처에 널려있다.

딸기아이스크림에서는 딸기씨가 서걱서걱 씹히고 살구아이스크림에서는 살구씨가 막 나온다.

베스킨라빈스가 1년도 안 되어 철수 할 만하다.





















2차 대전 이후로 이탈리아의 정권은 1년에 한번 꼴로 바뀌고 있다지만,

보존정책 하나만큼은 놀라우리만치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찾기 힘든, 로마에서만 본 것을 또 하나 들자면,

이 장난감 같은 미니버스다.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기존의 건물이나 도시의 구조를 여간해서는 함부로 고치지 않고 있지만,

과거의 도시 속에다 현대의 삶을 담으려니 기능적인 부분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비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다니기 위해 특별히 만든 이 녀석으로도

좁다란 틈새를 빠져나가는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날씨는 덥고, 뭔가가 버스를 가로 막은게 아니라 원래 비좁은 길 때문에

차들이 다 빌빌대고 있으니 괜한 짜증이 난다.













딱히 이렇다 할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터져나갈 듯한 관광객들도 피할 겸,

재미 있겠다 싶어서 그냥 일부러 한번 타 본건데.

어차피 제대로 다니지도 못할거 이럴거면 버스는 뭐하러 만든건지 모르겠다.

이놈의 리딸리아노들이란... 이런 녀석들이 로마제국을 만들었다니..

순간, 버스에 앉아 있는 다른 승객들의 더 없이 평온한 표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현지인들은 모두가 휴가를 떠나고 없다는 여름철의 성수기지만,

장바구니를 손에 든 아주머니라든지 지팡이 하나만 가진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리딸리아노’인게 분명하다.

숨 막힐 듯 몰려 오는 관광 인파들부터 시작해서 덥고 짜증나는 날씨도, 빌빌대는 버스도,

이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리딸리아노는 바쁘지 않다.

이들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다. 91년에 청소년 월드컵이 이탈리아에서 열렸을 때,

메인스타디움을 완벽하게 지으려다 보니 제 때 완공되지 않아서

별 수 없이 다른 축구장을 빌려다 경기를 치뤘단다.

다이나믹 코리아의 제주도 월드컵 경기장은 휴일도 없이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뚝딱 완성한 대신 비만 오면 물이 새고 태풍만 불면 관중석 지붕이 찢겨나가던데.









하지만 이탈리아는 워낙에 축구 좋아하는 나라다 보니 큰 규모의 축구장이 많아서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제때 공사를 마치지 않았다간 21세기의 첫 월드컵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어야 했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다.































조상들의 역사는 보존하는게 마땅하지만 카이사르만큼이나 유명하신

로마의 소매치기들은 제발 싹 좀 잡아갔으면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제는 여행의 베테랑이랍시고

바지주머니에 돈을 구겨 넣은 채 트레비 분수 앞에서 한참을 넋 놓고 앉아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유럽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까 어디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려고

꼭꼭 아껴 둔 20유로였는데..

친구들 줄 기념품을 사 모으면서 유로화도 다 써버렸는데..











기분이 몹시 상한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도둑놈으로 보인다. 나쁜놈 같으니…

그리고 또 억울하다. 그 동안 숟가락 하나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잘만 다니다가,

그깟 2만원 좀 더 되는 돈 소매치기 당한 것 때문에 500만원들인 여행의 마지막날 밤을

이렇게 우울해 해야 하다니.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도 줄곧 이 나라 국민들의 윤리의식과 치안환경을 저주하다가 문득,

이렇게 불쾌해 봐야 결국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건 소매치기를 당한 것은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밤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신은 내게 소매치기라는 closer를 보내어 끝내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죄를 벌하려 하는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수야 없다.

이쪽에도 50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히든카드가 있다.

선동렬 김병현을 상대로 내보낼 나의 이승엽,

우울한 기분을 반전시켜 줄 역전만루홈런 치는 방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서 손가방과 배낭, 주머니를 몽땅 털어 그 동안 쌓인 동전을 다 긁어 모아보니

딱 4유로 62센트가 나온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부리나케 슈퍼마켓으로 달린다.



















4유로 주고 사 온 커다란 바베큐 치킨에,

호스텔 주방에 주인 없이 버려진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도 있다.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냄새가 좋으니 맛도 좋겠지. 다 먹고 나면 배가 부르겠지.

이따가 방으로 돌아가면, 좀 전에 로마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샤워하러 간다던

스코틀랜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거고,

나는 스코틀랜드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에 열을 올리며

되지도 않는 영어를 열심히 주워 섬길거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모두 이런식이었으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기분 좋다. 행복하다. 후훗..











2006년 6월 20일부터 8월 10일. 53일.

그닥 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만도 아니었다.

기차로, 비행기로, 버스로, 걸어서, 부단하게 다녔다.

여행은 압축된 삶이라던데, 과연 나는 1년 만에 쓸 돈을 다 써버렸다.

2년 동안 걸어 다닐 거리를 다 걸었고, 4년치의 겪을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6개월 전부터, 혹은 8년 전부터. 길게는 17년 전부터 반드시 가리라고 벼른

베네치아와 바티칸과 영국자연사박물관을 직접 보게 되며 벅찬 감흥을 느꼈었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땅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벌벌 떨기도 했었지만,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따뜻한 대화는 잊기 힘들 것이다.















예상 이상으로 시원시원 잘 통하는 내 영어가 자랑스러웠고,

동양인이라서 알게 모르게 당하는 차별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않기도 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 한적도 있었고, 실제로 한번 당했다.

남의 집 창고에 숨어서 잔 적도 있다.













사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광'으로서는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관광이라면, 살이 5Kg이나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매일 저녁 세면대 위로

빨갛게 방울방울 퍼지는 코피를 보며 한숨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들 즐겁게 고기 써는 야외레스토랑 건너편에서 쭈그려 앉아

혼자서 딱딱한 빵 조각을 씹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유럽을 느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했다.

기대이상의 성공한 여행이었다.

100점 만점에 120점 준다.

 








































































































































































까짓거 유럽 별거 없더라.

내가 이겼다.

 




















이미지에도 안 맞는 재탕글 잘 봐주셔서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전 그럼 이제 다시 본연의 즟질 유저로 돌아가렵니다.. ㅌㅌㅌ...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5-04 17:12:58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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