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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과 <군도>가 히트를 하니 여러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두 영화 다 시대극이다 보니 고증의 문제가 걸리는데요. 시대적 고증에 대한 문제는 의미 있는 지적이나 그게 영화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게 EBS 역사 다큐가 아니라면 좀 너그럽게 봐주는게 맞지 않을까요? 지금은 절판이 되었지만 역사학자 마크 C 칸즈가 편집한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라는 두 권짜리 책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다룬 영화들 중에서 역사적 시각이나 고증이 잘못 된 것들을 지적하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존 포드 감독의 초기 걸작 <젊은 날의 링컨> 같은 영화도 단두대에 오릅니다. 이 책은 역사를 공부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영화를 보는데는 별 도움이 안되는 책입니다. 

만약에 물리학자가 SF 영화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고 그 때문에 그 영화는 볼 가치가 없다면 동의하시겠습니까? 정재승 교수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이 그런 책이죠. <스타워즈>에서 광선검은 물리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우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기에 우주선들이 폭파될 때 나는 소리는 오류라고 지적하거던요. 다행이 저자인 정재승 교수도 영화를 보는 것과 과학을 보는 태도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죠 .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과학 공부의 텍스트로 삼은 것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고증을 들이대면서 그 영화 전부를 평가하는 것은 마치 기독교에서 성경을 들이대고 성서물 영화를 평가하는 것과 같은 태도라고 봅니다. 영화 외적인 것은 외적인 영역에서 지적하는게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군도>를 만든 윤종빈 감독이나 <명량>의 김한민 감독 모두 남의 영화를 조금씩 베끼고 있습니다. <군도>는 타란티노류의 영화를, <명량>은 이 영화보다도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이 <아포칼립토>를 표절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광해>가 일본 영화 <카게무샤>와 미국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지요.

그런데 사실 영화는 음악과 달리 '표절' 운운할게 못됩니다. 영화는 태생 자체가 '도둑질'이기 때문입니다. 연극, 회화, 소설, 음악.. 영화는 다른 예술의 것을 훔쳐왔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는 감독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은 수많은 도둑질을 하는데 과장되게 말하면 이 도둑질이 누벨바그의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선배 감독의 영화를 훔치는 것을 넘어서 미국 감독, 일본 감독의 영화들을 훔쳐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도둑질은 어린 시절 도둑질에서 출발한거죠. 누벨바그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고다르는 감독이 되어서도 남의 물건을 슬쩍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자신의 영화들을 수많은 영화의 도둑질/인용으로 만들어 냅니다. 고다르의 최근 영화들을 보셨나요? 여기 저기 세계 각지의 영화들을 가져와 누비이불처럼 꿰매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미국의 독보적인 영화 장르였던 웨스턴을 훔쳐간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아의 도둑놈입니다. 그가 훔쳐온 것을 밑천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들었지요. 구로자와 아키라도 웨스턴에 슬쩍 손을 대고 존 포드의 영화를 훔쳐와 사무라이 영화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 중에 <7인의 사무라이>가 있지요. 존 스터지스는 <7인의 사무라이>를 다시 훔쳐서 <황야의 7인>을 만듭니다... 단, 이왕하는 도둑질. 주인도 몰라볼 만큼 멋지게 바꿔 놓을 필요는 있을 겁니다.  



영화는 혈통 자체가 도둑놈의 혈통입니다. 그러니 이 재미난 도둑질을 즐기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재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