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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원 제목이 ‘Two Days, One Night’입니다. 

줄거리 요약이 귀찮아서 네이버 줄거리를 그대로 옮겨 와 보겠습니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는 것.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 덕분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려 하지만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말은 어렵기만 하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동료들. 마음을 바꿔 그녀를 지지해주는 동료도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지는데… ”
 
이 영화를 보면서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어요. 먼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눈>(1952)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은 적들과 싸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닙니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 말 그대로 ‘하이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성큼성큼 걷는 보안관 케인의 모습이 산드라의 모습과 겹쳐지더군요.
또 한편은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안토니오는 아들 부르노와 함께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으러 로마 시내를 배회합니다. 그 자전거가 없으면 부르노의 집안은 생계가 곤란해지거던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원제처럼 두번의 낮과 한번의 밤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장 동료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설득의 영화’입니다. 그 설득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산드라가 동료들을 설득시켜야 하고 영화 밖에서는 관객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죠. 

영화 초반에 설득의 상황이 미리 제시되기에 영화의 흥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식의 영화 흔합니다. 주제는 훌륭하지만 그냥 감정을 질질 흘리는 영화 말입니다. 저는 좀 피식했어요. ‘이 할배들 이제 공력이 많이 떨어졌네... 이런 후진 네러티브를 들고 나오다니... 그래 이제 한번 나를 설득해봐’하고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자 이제 그 마술의 광경을 한번 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영화는 결국 산드라에게 설득 당하는 사람과 당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겠죠. 동료들이 처한 상태가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전기세도 못내는 사람, 집을 넓힌다고 이미 돈을 다 써버린 사람, 생활비가 부족해서 주말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다음 장면들은 설득 당하지 않는 사람을 투 숏으로 잡은 것들입니다.
 

  

다르덴 형제는 설득 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산드라와의 사이에 중간에 금을 하나 그어놓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에 반해 산드라의 입장을 이해하고 기꺼이 그녀의 편에 서는 입장의 사람들을 모아봤습니다.




우선 산드라의 입장에 서서 따뜻한 보온 병에 차를 대접하는 동료 스칼렛이 보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시각적 단절을 보여주는 금이 보이지 않지요?
밑에는 요리사로 일하는 산드라의 남편입니다. 남편의 직장에 와서 아이들과 점심을 먹다가 산드라가 감정에 북받쳐 밖으로 나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차가 옆에 있으나 남편은 산드라 쪽에 붙어 있습니다. 차와 차 사이에서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은 동료들의 집을 찾아다니다 잠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산드라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만 보여주면 심심할테니깐 다르덴 형제는 응용을 합니다.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입 계약직원입니다. 처음에는 반대의 의사를 보이다가 찬성을 합니다. 뒷 배경을 보세요.단절의 수직에서 수락의 수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남자 동료 두명이 차를 수리하고 있는데 산드라가 찾아갑니다. 뚱뚱한 직원은 난처해 하는데 젊은 남자가 와서 산드라에게 욕을 합니다.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마라! 거지 같이 구걸하지 마라!'라고 고함을 치죠.
뚱뚱한 남자가 이 젊은이를 막는 순간 수직의 구도가 무너집니다. 젊은이는 뚱보 남자와 산드라를 때리고 이 장소를 빠져 나갑니다.
차 안에서 기다리던 산드라의 남편이 기절해 있는 뚱보 남자에게 물을 뿌리는게 마지막 모습입니다. 이것도 반대의 입장에 있다가 산드라 편에 서는 모습이죠.

싸움이 산드라의 편이 되는 경우는 또 있습니다.



산드라와 친한 동료는 집을 수리하는데 돈을 너무 써버려서 난처해합니다. 보너스가 들어 올 줄 알고 집 수리 비용으로 사용한거죠.
처음에는 반대의 의사를 보이다가 나중에 남편과 한번 상의해 볼테니 오후에 들러라고 합니다.
처음 사진은 오전, 그 다음 장면은 오후의 모습입니다. 동료의 남편이 화를 버럭 내자 이 여자가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옵니다. 맨 마지막에는 산드라의 집을 찾아온 동료의 모습입니다. 산드라의 남편이 산드라에게 안내해 주는 모습인데.. 두 사람 사이에 수직선이 산드라와 동료 사이에서 동료와 동료 남편으로 옮겨져 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카메라의 움직임은 산드라가 동료 티무르를 설득하러 간 장면입니다.











티무르는 주말에 축구 클럽에서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산드라가 축구장에 들러 '티무르~'하고 몇번 외칩니디. 그리고 화면에서 산드라가 갑자기 빠져 나갑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사진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이게 롱테이크로 찍었습니다.
컷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죠.
티무르가 화면 저 쪽에서 달려옵니다. 마치 산드라의 마음에 폭 안기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 남자 산드라를 보며 '보너스를 택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 내가 처음 이 직장에 왔을 때 실수로 전구를 깨드렸는데 산드라 너가 그걸 자기가 한 거라고 뒤집어 썼잖아.. 그걸 알면서도 내가 보너스를 선택하다디...'
급기야 이 남자 엉엉 고개를 숙여 웁니다.
카메라는 컷하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번갈아 가며 두 사람을 잡습니다.
노동자가 연대가 이렇게 아름답게 카메라로 연결됩니다.

자.. 산드라가 동료들을 모두 설득할까요?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우리 생활 가까이에 침투해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영화관에서 막을 내리기 전에 달려가서 보시길 바랍니다.